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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길마 아재

5. 에일런(17)

넓은 사무실 구석에 한 무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일부는 일이 잘 안 풀리는 듯 거의 넋을 놓은 것 같다.

그리고 한 쪽에는 컵라면과 김밥 등 인스턴트 음식을 먹은 흔적이 남아있었는데 하루 이틀에 걸쳐 쌓은 수준이 아니었다.

보아하니 며칠 밤을 새운 듯 하다.


  "오늘은 몇 명이나 지원했지?"


며칠동안 제대로 씻고, 자지도 못했는지 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남자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총 57명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특이사항이 있어요."


  "특이사항?"


통태 눈알 같던 남자의 눈에 순간 활기가 조금 돌아왔다.

보통 특이사항이랄만한게 없는데 그녀가 특이사항이라고까지 말 하는 것을 보니 의문이 들었다.

그저 지원자를 뽑는 것일 뿐인데 특이사항이랄게 있나?


  "네. 불과 어제 만난 유저가 신청했어요."


  "어제 만난 유저라... 그게 한 둘이어야 말이지. 혹시 스페셜리스트라도 돼?"


스페셜리스트가 지원했다면 특이사항이란 말을 납득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뇨. 어제 저를 호출 한 트레인이라는 유저요. 그 왜 드래곤 슬레이어인데 먹튀를 했다는 그 유저요."


순간 어제 일이 떠오른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나이도 자기보다 많으면서 여자를 울리고, 이 회사에 취업을 하고 싶다고 했던 그 유저가 QA/ 버그리포트를 지원한다?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여자는 그의 상사가 아무 말이 없자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떡해? 그냥 잘라버려. 지혜씨도 상대 해봐서 알잖아."


  "네 뭐... 그렇긴한데."


그래도 공정하게 일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되나?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순간 자신이 울었던 일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울려고 운 것이 아닌데 그 모습을 상사에게 보였다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애당초 당시 우리 쪽에서도 버그관련해서 확인된 것도 없고, 증거나 증인도 없었어.

그리고 정황을 보더라도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빆에 판단할 수 없어.

우리측 잘 못 없으니까 너무 쫄지 마."


  "네..."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원자에서 트레인을 제외시켰다.


  "아참. 그 유저 수배 풀어주는건 어떻게 됐지? 안 풀리면 전화 할 것 같은데..."


  "좀 전에 개발팀에 물어보니까 처리 됬다던데요."


  "휴. 다행이군."


혹여 오늘 처리가 되지 않았다면 아재이니만큼 전화로 징징거렸을거라 하니 끔찍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건 아니지만 그라면 틀림없이 그러리라 생각했다.










점심쯤 PC방에서 나온 재현은 캡슐방으로 향했다.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갈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겐 미안하지만 차라리 던전을 돌면서 얻은 아이템을 팔면 수입이 좀 될 것 같다.

스페셜리스트가 오래된 게임이긴 하지만 이만한 게임이 또 없기 때문에 아이템을 현거래 하면 꽤 수입이 짭짤했던 것이다.


다만 아이템을 판다고 해서 모두 잘 팔리는 것은 아니었기에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면서 효율적으로 아이템을 파밍해야 했다.

그럴려면 정보가 필요하니 그는 에일런의 대검관련 퀘스트를 완료 후 길드를 만들기로 했다.

어차피 퀘스트 완료만 하면 되는거라 오늘 중으로 길드를 생성할 수 있으리라.


  - 스페셜리스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게임에 접속하자 환영 문구가 나오면서 그가 마지막으로 접속했던 장소로 이동되었다.

그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트레인

타이틀 : 드래곤 슬레이어

등급  : C

랭킹 :  -


특이사항


- 복귀자 혜택 적용중

  1. 아이템 드랍률 2배 증가 1주일

  2. 워프 게이트 무료 이용 가능 1주일

  3. 이동속도 100% 증가 1주일

- 여신의 축복 적용중 : 죽어도 아이템이 드롭되지 않습니다.]



  "오오! 생각보다 빨리 풀었구만."


혹여 안 풀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 수배가 풀려 있었다.

이제 수배때문에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니 홀가분했다.

며칠 안되긴 했지만 이것때문에 얼마나 마음 졸이며 살았던가?


  "이제 안심하고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겠어."


수배가 없으니 퀘스트를 완료하러 에일런 내성으로 가는데 망설임이 없어졌다.

그 때 메시지가 왔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용을 확인 해보니 소민이었다.



[안녕하세요. 트레인님.

오늘 안 오시는 것 같아서 먼저 로그아웃 합니다.

나중에 또 만나요!]



내용과 시간을 보니 좀 전까지 이 곳에 있다가 나간 것 같다.

그는 쪽지를 남길까 생각을 했는데 또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 소민님께서 친구신청을 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트레인은 별 생각 없이 친구신청을 수락했다.

친구신청을 받는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많이 친한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 조금은 친해질 수도 있고, 도움 받거나 도움 줄 일도 생길지도 몰랐다.

어찌보면 일종의 보험같은 느낌이다.


실제 게임을 하면서 친구를 맺은 사람 중에서 정말 친한 사람은 몇 없다. 

대부분이 친구를 맺은 유저가 접속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고 일부는 예의상 인사는 하는데 그 이후 그냥 자기들 할 일만 한다.


가끔 그들에게서 귓말이 오는 날엔 조심스럽게 '님 혹시 사간 되세요?'라거나 '죄송한데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기때문에 트레인은 이 친구 시스템이란 것이 일종의 보험이라 생각했고 친구 신청이 오면 거절하지 않았다.

언젠간 자신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날이 올테니까.


  "친구 추가 받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길드만 해도 혼자서 만들 수는 없으니까..."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길드를 창설하려면 5명이 파티를 맺은 상태에서 길드 관리인에게 신청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아쉬운 그로써는 소민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어떻게보면 이기주의때문에 타인을 이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에겐 더 이상 친구가 없었으니까.


트레인은 영주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도망치는 바람에 제법 멀리까지 오긴 했지만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오다보니 금방 입구까지 도착했다.


경비병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입구를 통과하려는 그를 막아섰다.


  "여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무슨 일이냐?"


  "여기 영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최근 떠도는 이상한 소문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니 안에 기별을 넣어주시지요. 이름은 트레인입니다."


경비병은 트레인을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후임병에게 기별을 넣으라고 지시했다.

보통 이런 말을 하면 헛소리 말라며 쫓겨나는 경우가 많지만 퀘스트다 보니 쫓겨나는 일은 없었다.

잠시후 내성으로 들어갔던 경비병이 달려왔다.


  "영주님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흥! 운이 좋았군. 들어가도 좋다."


입장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지자 트레인은 성문을 지나 한참을 걸었다.

에일런 자체가 넓은 편이어서그런지 내성으로 가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마차였다면 좀 더 빨리 갔겠지만 아쉽게도 말이 없는 관계로 걸어가야 했다.


내성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위에서 지시를 받은 듯 병사들은 그를 제지 하지 않아서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트레인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집사로 보이는 듯한 노인이 가볍게 인사를 하며 길을 안내했다.

성 안은 귀족의 성답게 호화로운 느낌이었는데 벽 곳곳에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고, 기둥쪽에는 꽃병이 놓여있었다.


  "여기입니다. 들어가시지요."


실내를 구경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한 트레인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서재인 듯 벽에 수 많은 책들이 꽂혀있었고 창가 앞에 책상이 놓여있었다.

영주인 듯한 50대 남성이 서류같은 것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인기척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뭘 그리 서있는가? 여기 앉게."


  "아! 네."


트레인은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래. 듣자하니 이상한 소문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수백년 전 초대 에일런 영주께서 흑마법사를 토벌하다가 돌아가셨고, 이후 흑마법사의 저주가 지금까지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건 사실일세."


  "그런데 제가 알아보니 흑마법사는 완벽하게 토벌되지 않았고 이후 리치가 되어 무한의 탑에서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쾅!


  "뭣이?!"


에일런 영주가 흥분하며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지 트레인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거짓을 말한다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거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말 그대로입니다. 흑마법사에 대해 조사하던 중 에일런 남쪽에 무한의 탑이란 것이 있고, 그 곳에 리치가 산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곳에서 리치를 만났습니다."


  "그럴수가! 분명 초대 영주님께서 토벌했다고 하였다."


  "아마 흑마법사가 죽기 직전 악마와 계약을 맺어 리치가 되었고, 이후 저주를 내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걸 보시죠."


트레인은 영주가 믿지 못하는 것 같아 부숴진 라이프 베슬을 보여주었다.


  "이럴수가. 이건 라이프 베슬이 아닌가? 정말 리치가 되어 저주를 내렸단 말인가!"


영주는 라이프베슬을 보고나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무한의 탑에 리치가 산다는 정보를 입수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문이 흑마법사의 생사 여부를 확실히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갔다는 것이어서 부정했던 것이다.


  "진작에 이 소문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여 리치를 토벌했었어야 했는데 자네가 대신 수고를 해 주었군.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닐세. 말은 쉽지만 자네처럼 이렇게 리치를 토벌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란 것은 잘 알고있네. 미약하나마 이걸 받아주게."


영주는 서재에 꽂힌 책 중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나한테는 필요가 없지만 모험가들에겐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하더군. 아이템 감정 스킬북일세."


아이템 감정 스킬북!

예상치 못한 보상에 트레인은 깜짝 놀랐다.

아이템 감정을 할때마다 감정 스킬이 없어 얼마나 불편했던가?

감정 스킬을 배우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저가 감정 스킬을 포기하고 감정 스크롤이나 감별사 NPC에게 의존했었는데 그 귀한 감정 스킬북이 손에 들어올 줄이야!


트레인의 광대가 승천했다.

트레져헌터로써 어지간한 스킬은 다 배웠지만 딱 하나, 감정 스킬만 배우지 못 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는 너무 기쁜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했다.

오버이긴 하지만 그만큼 기뻤던 것이다.

영주도 싫진 않은 눈치다.


  "아닐세.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오히려 고맙네."


영주는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귀족이라해서 성격이 좀 별날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좋은 사람 같았다.


  "아참! 그러고보니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영주는 뭔가 보여줄 것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트레인은 인벤토리에서 에일런의 대검을 꺼내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검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검을 본 영주는 깜짝 놀랐다.

가보가 왜 생판 모르는 저 자의 손에 있단 말인가?


  "이, 이 검을 어디서 구했는가?"


  "에일런 외곽 유적지에서 구했습니다."


트레인은 유적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대장장이가 했던 말은 빼버렸다. 괜히 가문의 수치에 대해 이야기 해봐야 좋을 것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가 이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기때문이다.


  "하아. 그런가... 그래.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그 검이 진짜 에일런의 대검이라네.

예전에 어떤 일을 계기로 잃어버렸었는데 다시 보게될 줄이야."


그가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어떤 일이라는 것이 선대 에일런 영주가 술먹고 검을 잃어버렸던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퀘스트그 발생했다.


띠링!


[에일런 대검 반환]


에일런 영주가 진짜 에일런 대검의 반환을 원하고 있다.

대검을 반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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