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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길마 아재

1. 접자(1)

  "자, 하나 둘 셋 하면 점프 할게요. 하나 둘 셋! 점프!"


보통 하나 둘 셋 하면 찍을게요. 라고 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드래곤 레어. 이 게임 [스페셜리스트]에서 한 번도 정복 당한 적이 없다는 그 드래곤의 레어였다.


남자의 지시에 맞춰 사람들은 공격을 하다가 제자리에서 점프를 했다.

그 순간 땅에서 무시 무시한 푸른색 화염이 순식간에 나왔다가 사라졌다.


  "네. 좋습니다. 이제 탱커님들은 드래곤이 정면으로 브레스 쓰니까 주문서로 속성 저항력 올리시면서 어그로 끌어주시고, 딜러 분들은 그 틈에 드래곤 좌측과 후방을 공격 해 주세요. 그리고 브레스가 멈추는 순간 멀리 피하셔야 합니다. 힐러님들은 포지션 그대로 지켜주세요."


갑옷을 입은 남자는 드래곤의 반응 하나 하나를 자세히 살피면서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보진 못 하겠지만 남자는 가능했다.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전멸하고 다시 도전했으니까.

잠시 후 남자의 말대로 드래곤이 정면으로 브레스를 뿜었고, 팀원들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좋습니다. 딜러님들 스킬 난사 하시고 힐러님들 힐 해주세요. 그리고 탱커분들 드래곤이 정신 차리면 바로 도발 해주세요."


그의 지시에 따라 공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미 수 십, 수백번을 했던 일이기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깔끔했다.

딜러들의 공격이 한창일 무렵 드래곤은 어느새 정신을 차렸고, 딜러들은 공격을 중단했다.


  "지금이에요! 탱커분들 한분씩 돌아가면서 도발 해 주시면 딜러분들 다시 공격 들어갑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탱커 한명이 드래곤을 도발했다.

그러자 드래곤이 자신을 도발한 인간을 향해 마법을 난사했고, 힐러들은 탱커를 집중적으로 치료를 해주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공격이 얼마나 강력한지 3초도 안되서 그의 체력이 1/3까지 떨어졌다.


  "도발 지속시간 끝났습니다! 다음 분 오세요!"


탱커의 외침에 머리 위에 숫자 2가 적힌 유저가 이어서 도발을 해서 어그로를 받았다.

그 순간 드래곤의 목표가 바뀌었고 힐러들은 2번째 탱커에게 버프와 치료 마법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마법이 너무 강력해서일까?

탱커의 체력이 순식간에 바닥나기 시작했다.


  "다음! 다음!"


예상치 못한 딜량에 2번째 탱커가 다급히 3번째 탱커를 불렀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다음 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진작 바톤 터치를 했어야 할 3번째 탱커의 머리 위에 번개 마크가 떠있었다.

그 모습을 본 공대장은 재빨리 외쳤다.


  "3번째 탱커분 팅긴 것 같은데 4번째 탱커분이 지금 어그로 받으세요!"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것일까?

결국 2번째 탱커는 전사했고, 그와 동시에 어그로가 풀린 드래곤이 날뛰면서 공격대의 2/3이 죽어버렸다.

약 10초만에 생긴 일이었다.


  "하아. 아직 마지막 페이즈도 못 갔는데 이런 실수를!"


  "아! 324번째 트라이도 끝나는건가."


잘 나가다가 순식간에 전세가 기울자 공대원들의 사기도 꺽여버렸다.

공대장이 분하다는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늘 이런식이었다. 패턴을 다 파악 하면 뭐 하는가?

꼭 한 두명이 말썽을 부려서 전멸을 하는데.

괜히 공대장들이 트라이할 때 한숨을 내쉬는게 아니다.


처음 도전을 할 때는 패턴도 모르고 무작정 들어가서 몸으로 경험을 쌓게 된다.

물론 전멸을 밥 말아 먹듯 하긴 하지만 그 때는 처음이니까 도전한다는 그 자체가 즐겁다.

팀원들과 함께 도전하는 그 행동 자체가 좋고, 언젠가 클리어하겠지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10판, 100판, 200판 넘어가다보면 그딴거 없고 그냥 저런 실수, 혹은 예상치 못 한 일들 하나 하나가 짜증난다.

처음엔 욕도 해 보고(그러다 사사게 - 사건 사고 게시판 - 에 등록되어 한 동안 그 어떤 파티, 공격대에도 가입을 하지 못 한 적이 있었다.) 좋게 좋게 타일러도 봤지만 이젠 그럴 기운조차 없다.


그 모습을 본 BJ를 하는 공대원의 시청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 이래나 저래나 죽을거 그냥 싸워!


  - 에휴. 너네도 어쩔 수 없는 그 많은 공대 중 하나일 뿐이네.


   - 수고하셨습니다.


  - 공대장 개 빡칠 듯 ㅋㅋㅋㅋㅋㅋㅋㅋ


  - 탱커 하나가 다 말아 먹었네 ;ㅂ;


  - BJ루커님 오늘 방송은 여기까진가봅니다....


그 때였다.

공대원 중 한 사람이 드래곤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다 같이 달려 들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혼자 뛰어든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일이었다.

그는 드래곤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포기하지 마라! 아직 모른다!"


삐에로 가면을 쓰고 있는 그는 패기롭게 드래곤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 모습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래 전의 눈보라 게임의 한 플레이 영상이 떠오른닼ㅋㅋㅋㅋ


  - 어휴 아재...


  -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차피 죽으니까 트롤링하는 것 보소 ㄷㄷ하네


  - 이거 영상 업로드 각이다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대원들의 반응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의 공격이 실패하리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이미 그들의 앞에 반투명한 창 하나가 떠있었다.

포기하겠냐는 팝업창이었다.

공대원들은 예를 누르려다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지자 잠깐 보류했다.


  "저러다 죽겠지."


  "패기 보소. 지리네 지려."


  "키야!"


드래곤의 비늘이 어떤 비늘인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하는 검이라도 뚫을 수 없는 비늘이다.

저런 조잡한 검으로 뚫을리가 없다.

그런데 그의 검은 좀 달랐나보다. 마치 식빵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쉽게 뚫는게 아닌가?


푸욱!


  - 크아아아앙!


드래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마구 날뛰었고, 예상치 못 한 그의 활약에 공대원들은 깜짝 놀랐다.

이어서 삐에로 가면의 유저가 드래곤의 몸에 칼을 박은체 달리기 시작했다.

중력에 의해 바닥에 떨어져야 하건만 그는 박힌 칼로 드래곤의 피부를 그으며 심장으로 이동했다.

이동을 할 때마다 드래곤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것은 당연했다.

심장에 부분에 도착한 그는 이어 스킬을 난사했고 드래곤은 마지막 페이즈로 넘어가기도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야 말로 버스트 딜이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BJ루커 방송 채팅창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 와 개쩐다! 딜량 보소


  - 대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이런 명장면엔 추천이지!


  - 저 사람 누구임??


  - 와 소름! 스페셜리스트가 저 공대에 있었네 ㄷㄷㄷ


  - 스리(스페셜리스트 줄임말)가 저렇게 강하단 말야? 개쩌네 ㄷㄷ


  - 스리 너프 좀


  - 내일부터 랭크 올리러 가 봅니다. 나도 스리까지 랭크 좀 올려야 할 듯


스페셜리스트.

게임의 이름이자 이 게임의 최상위 10명에게 주어지는 칭호.

이 게임은 PK 및 PVP가 메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랭킹만 올린다면 누구나 스페셜리스트에 도전할 수 있으며,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최상위 10명 안에 들어가는 자에게는 게임 내에서 엄청난 혜택이 주어진다.

그로 인해 너도 나도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도전을 한다.

그것이 바로 스페셜리스트가 대박 친 이유다.


드래곤이 쓰러지자 삐에로 가면이 한심하다는 듯 공대원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해? 아이템 챙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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