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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길마 아재

5. 에일런(16)

인기척도 못 느꼈는데 대체 언제 왔단 말인가?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설마 들은 것은 아니겠지?


  "아냐. 아무것도. 그런데 방에 들어간 것 아니었어?"


  "들어갔는데 물마시러 다시 나왔다."


  "그렇구나. 난 내 방으로 갈게."


이연은 아무렇지도 않은척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현은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목덜미를 잡아 그녀를 잡았다.


  "뭐야? 이거 놔."


  "가긴 어딜가? 질문에 대답은 해야지."


  "뭐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내심 찔렸지만 모른척 발뺌했다.


  "들킬뻔 했다는게 뭐야?"


  "그게 무슨 말이야?"


  "니가 그랬잖아. 들킬뻔 했다고."


설마 했는데 확신에 찬 저 말투를 보아하니 들었나보다.

여기서 말을 잘 해야 했다.

잘 못하면 약점을 잡혀서 한동안 집에서 힘들어질테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난 시험 공부하러 가야되니까 이것 좀 놔."


일부러 신경질적으로 말을 했다.

여기서 자신을 낮추거나 대답을 해봐야 오히려 얕보이기 쉽다.


  "말 하라고."


  "그러니까 뭘?"


  "하아. 끝까지 오리발이네? 안되겠다. 엄마한테 말해야곘다."


이현은 자신의 뜻대로 안 풀리자 주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연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하면 부모님이 뭘 숨기냐고 물어볼테고 대답을 못 하면 혼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연이 선수쳤다.


  "엄마! 오빠가 시험 공부 하려는데 방에 못 들어가게 막아!!"


이연의 외침을 들은 지연이 부엌에서 달려와 이현에게 등짝 스매시를 날렸다.

어찌나 빠른지 피할 틈도 없었다.

아니, 피하면 추가 데미지를 넣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했다.


짜악!


등이 따끔거렸다.

이현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악! 아냐. 엄마가 잘 못 알고 있는거야!"


  "잘 못 알고 있는거라고? 니가 지금 하는 행동은 뭔데?"


지연이 동생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손을 가리키자 이현은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진작에 놨었어야 했는데 여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이다.


  '간악한 계집애!'


  '메롱!'


지연의 시선이 이현에게 가 있는 사이 이연이 뒤에서 잘됬다는 듯 그를 놀렸다.

그는 이연을 노려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지연에게 다시 한 번 등짝 스매시를 맞았다.


  "이게! 오빠가 되어서 뭘 잘 했다고 동생을 괴롭혀?"


  "아오! 진짜...!"


순간 자신의 억울함을 외치고 싶었지만 이미 승기는 동생의 손에 넘어갔다.

여기서 더 반항해봐야 본인만 손해다.

이연에 대해 말을 하려 해도 어디까지나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기때문에 그는 물러났다.

가족과 17년간 살아오면서 터득한 생활의 지혜랄까?



  "한 번만 더 동생 괴롭히면 용돈 없을 줄 알아!"


지연은 이현이 잠잠해지자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이연 역시 승자의 미소를 보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두고보자! 후회하게 해 주겠어!'


그는 속으로 칼을 갈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재현은 오늘도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며 집을 나섰다.

원래 마트가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것은 아니어서 출근길(?)은 널널했다.

아침과 달리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는 것도 아니기때문에 편안하게 오늘도 거리를 방황했다.

그러다 무작정 돌아다니기도 뭐해서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는 노인들과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 몇 몇이 눈에 띄었다.

재현은 근처 벤치에 앉았다.


  '오늘 뭐하지?'


어제는 그래도 할 일이 있었는데 오늘은 할 일이 없다.

캡슐방?

가고는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염치가 없다.

이럴때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예전의 사건때문에 얼마 없던 친구들마저 이젠 없다.


일을 할 때는 쉴 시간이 있었으면 했지만 막상 시간이 남아도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PC방이라도 갈까?'


캡슐방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해서 시간 떼우기는 좋다.

게다가 날씨도 추운 편이라 오전만 거기서 버티고 다시 나오면 될 것 같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이러는건데 잠깐만 PC방에서 버티자.'


날씨도 춥고 너무 할것도 없다보니 그는 합리화를 하며 PC방으로 향했다.






PC방은 오전이라 그런지 널널했다.

아니, 캡슐방때문에 널널한 것일지도 몰랐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재현은 적당한 위치에 자리 잡고 컴퓨터를 부팅했다.

예전 같았으면 부팅 시간동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겠지만 요즘은 워낙 기술이 발전해서 금방 컴퓨터가 켜졌다.


카드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했다.

그런데 막상 오니 하는 게임이라고는 스페셜리스트밖에 없어서 구직정보도 알아볼겸 인터넷을 실행 시켜 구직 사이트로 이동했다.


  - 기술영업 경력 직원 모집


  - 디자이너 모집


  - 함께하실 간호조무사 구합니다


  "......"


일단 일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 지역 외 따로 필터를 하지 않았는데 모두 전문직이거나 경력직 위주로 구하고 있었다.


그가 했던 일은 사무직과 마트에서 일한 것 외 나머지는 조금 하다 잘렸기때문에 특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지금은 더욱 일자리가 줄어들어 전문 기술이라도 익히지 않는 이상 취업은 더욱 어려웠다.


  '일자리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막상 자신의 조건에 맞는게 있어서 들어가보면 나이 제한때문에 이력서조차 넣을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스페셜리스트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원래 커뮤니티를 잘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 게임을 하면서 정보의 중요성을 깨달았기에 조금씩 활동을 하면서 언제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어제 스페셜리스트가 나왔던데...


  - 은빛 기사? 그거 실화냐?


  - 에일런 근처에서 스페셜리스트가?


게시판에는 대부분이 스페셜리스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어제 TV로 봐서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볼 것도 없어 아무 글이나 클릭했다.


  - 회원님께서는 일반회원이라 해당 게시물을 열람하실 수 없습니다.

열람을 하실려면 다이아 등급이 되어야 합니다.


  "하아."


역시나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어디서나 쉽게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


  '이러니 길드에 가입하라는거겠지.'


그는 자유 게시판을 돌아다녔다.

거긴 등급제한이 없어 아무 글이나 볼 수 있었던 것!

주로 잡담이나 친목글들이었지만 가끔 도움 되는 글도 있었다.


  - 철광석 요즘 시세가 올랐던데...


  - 마을 잡화상점 NPC호감도 올리는 방법 아시는 분?


  - 스페셜리스트 초보들을 위한 TIP


막상 들어가면 별거 없거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지만 몰랐던 부분들도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유독 조회수가 높은 글이 눈에 띄었다.


  - QA 및 버그 리포트 해 주실 분 구해요!


  "뭐지?"


보통 이런 글은 구직 사이트에 올리는것 아닌가?

순간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해당 제목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스페셜리스트 QA 및 버그 리포팅 해 주실 분 구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쪽지 주세요.


쪽지 남기실 때 아래의 양식에 맞게 기재해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디 : 

실명 : 

연락처 : 

이메일 주소 :  


자세한 내용은 선정되신 분들께 개별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짧지만 분명 구직과 관련된 글이었다.

댓글을 보니 대부분 사기니까 조심하라거나 믿을 수 없다는 내용들이었다.

가끔 쪽지를 남겼다는 글도 있었다.

재현은 바로 쪽지를 날렸다.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내용을 보면 구직과 관련된 일이니 게임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을 터!


쪽지를 남긴 그는 길드 게시판으로 눈길을 돌렸다.

자유 게시판은 더 이상 볼 것도 없어 나중에 길드라도 가입할 겸 보는 것이다.


  - 세이버 길드에서 길원을 모집합니다!


  - 매너 있으신 분들 모집합니다!


  - 복귀 유저가 길드 구해요~~


정보가 중요한 스페셜리스트답게 길드의 중요성을 아는 유저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른 게임과 달리 길드 게시판도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재현은 게시글을 하나 하나 살피면서 그에게 맞는 길드를 물색했다.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마땅한 조건의 길드는 없었다.


나이제한! 클래스 제한! 성별 제한! 등급 제한! 


모두 그에게 맞지 않았다.

어쩌다 조건이 맞으면 4050길드거나 정말 아저씨들의 동호회 느낌나는 길드였다.

단순 커뮤니티에서도 이렇게 조건에 맞는 길드를 구하기 어려운데 게임 안에서는 오죽할까.


  "하아. 할 수 없네. 길드를 만드는게 낫겠다."


그는 한 숨을 내쉬며 길드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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